'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처럼 한식을 논할 때
밥을 빼놓는 건 앙꼬 없는 찐빵을 먹는 것과 다름없다. 좋은 쌀로 갓 지은 포슬포슬한 밥 한 숟갈이면 그날의 시름은 눈 녹듯
사라진다.
카베르네소비뇽, 피노누아, 메를로, 쉬라즈, 말벡, 샤르도네, 리슬링, 소비뇽블랑, 세미용…. 한창 와인에 빠져있을 때
줄줄 꿰던 포도 품종들이다. 명칭은 물론이거니와 품종의 특징, 산지의 자연환경까지 꼼꼼하게 살폈다. 제법 신경 써서 마시면 품종 정도는 어렵지
않게 맞추는 스스로의 감각에 우쭐해하기도 했다.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에티오피아 시다모, 케냐 AA, 인도네시아 만델링, 과테말라
안티구아…. 커피붐이 일자 이번에는 커피 품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딱히 취미라기보다는 품종의 특징 정도는 알고 마시는 것이 현대인의 기본
상식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몇 해 전부터 밥(맛)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취재와 여행 목적으로 일본을 다니면서 일본의 밥맛이 유난히
좋다는 걸 깨닫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두 나라 모두 밥이 밥상의 주인공인데 일본의 밥이 유난히 맛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맛도 맛이거니와
2000년도 훨씬 전에 벼농사 방법을 전해준 종주국으로서 이는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도 했다. 다른 건 몰라도 밥맛에 있어서만큼은 일본에 꿀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밥맛은 좋은 품종의 쌀이 좌우한다
↑ [헬스조선]쌀밥
쌀과 밥에 대해 잘 모르던 시절에는 그저 맛있는 밥의 비결을 찾아
다녔다. 가마솥에 밥을 짓고 그 밥을 먹기 위해 손님들이 줄을 서는 음식점의 주인장과 인터뷰를 했다. 밥맛 좋기로 소문난 어느 암자의
공양주(供養主)를 만나러 가기도 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경험과 감각을 얘기했는데 이런 비계량적 요소를 맛있는 밥의 비결이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